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강 방어선 전투 (문단 편집) ==== 노량진 지구 ==== 전날에 이어 공병이 철교폭파에 대한 노력을 계속한 바 있으나 성공치 못하였는데, Church 준장의 요청에 따라 13:00를 전후하여, 오키나와의 Kadena (가수납)기지에서 출격한 미 제5공군의 B-26 폭격기가 철교의 중간단선을 폭격하기도 하였지만 그도 별무성과였다 ※ 참고 : 당시 항공 [[폭격]]의 정확도를 고려시 경부선 복선철교의 추가 폭파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절단되지 않은 철교에 피아의 관심도가 증대되어 가는 가운데 아군의 복장으로 가장한 적의 편의대가 산발적으로 도하를 기도하였다. 적의 도하정찰 : 적은 낮에 한강의 북쪽 인도교 입구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늘어선 전차의 화력엄호아래 작은 목선을 이용하여 분대규모로 도하를 기도하였다. 그들은 아군이 수도고지와 △39일대에 방어의 중점을 두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음인지 흑석동과 본동사이의 강변능선("도당재", 현 십용사 기념탑지)과 동작동―흑석동 지경의 능선쪽으로 사각을 찾아 도하하였는데, 이는 그들 주력의 도하에 앞서 엄호거점을 마련하는 동시에 아군이 방어선에 대한 병력배치상태를 탐지코자 하는 정찰로 보였다. 사단의 병력증강(혼성 5개 대대) : 이에 사단은 오후에 시흥 사령부로부터 급히 증원된 제1연대(장, 이희권 중령)와 제9연대(장, [[윤춘근]] 중령)의 혼성 각 1개대대 및 제20연대(장, 박기병 대령)와 제25연대(장, 김병휘 [[중령]])의 혼성 각 1개대대, 그리고 제15연대(장, 최영희 [[대령]])의 제3[[대대]]로써 담당지역의 방어력을 보강하였다. 그런데 이들 증원부대 가운데 제1, 제9, 제20, 그리고 제25연대는 의정부 정면에 투입된 병력으로써 전날 아침에 광나루에서 강을 건너 수원에 집결하여, 밤을 새워 재편을 끝내고 이날 낮에 열차로 시흥에 추진되었으며, 제15연대 제3대대는 봉일천 지구에 증원되었다가 제1사단(장, 백선엽 대령)과 함께 철수하여 전날 오후에 수색에서 [[난지도]]로 건너 도하한 다음 영등포에서 밤을 지내고, 이날 아침에 시흥에 집결한 것이었다. 이에 사단장은 노량진―영등포 도로의 북쪽 강변지역에는 제1연대를 증원하여 그 정면의 공병혼성대대와 방어책임을 나누어 맡도록 하는 한편, 동작동―노량진 도로 남쪽에 연하는 고지대의 확보에 주력키로 하고 다음과 같이 병력을 배치하였다. 제9연대 혼성대대 : 동작동―흑석동 사이의 능선 제20연대 혼성대대 : 흑석동―본동 사이의 능선 제15연대 제1대대 : 수도고지 북록(수원지 남쪽) 제25연대 제2대대 : 수도고지 서북록(사육신묘 남쪽) 제15연대 제3대대 : 수도고지 서쪽 당산(△76) 강변의 초일전 : 이리하여 제9연대(장, [[윤춘근]] 중령)는 제1대대장 유환박 소령이 통합지휘하는 증강된 1개대대로써 대방동의 사단수용소로부터 상도동으로 진출하여 무명고지 ㉮ (현 [[국립서울현충원]] 뒷산)에 올라서 보니 눈 아래 동북쪽으로 뻗어내린 능선(동작동―흑석동 지경선)이 끝 닿는 강변의 무명고지 ㉯ (명수대초등학교 동쪽 300m 구릉)를 소대규모가 점령하고 진지를 급편중이었다. 이에 동 대대가 예기를 몰아서 능선을 휩쓸어 나아가 단숨에 그들 적을 섬멸하고 말았으나 곧 강 북쪽으로부터 적의 포화가 집중되었으므로 그곳에서 한 걸음 물러나 ㉮ 고지의 정상에 진지를 편성하였는데, 이날 밤에 야음을 타서 적이 다시 도하하여 ㉯ 고지를 수중에 넣었다. 한편 제20연대(장, 박기병 대령)는 26일에 미아리에 투입된 제1대대(장, 김한주 소령)만이 수습되었던 것이나, 전날의 도하과정에서 그나마 병력이 분산되어 이날 수도고지 부근에 증원된 것은 2개중대 규모에 지나지 않았다. 이 역시 먼저 수도고지 정상으로 진출하여 강변을 굽어본바 흑석동―본동고개 너머의 "도당재"일대에 증강된 소대규모가 도하거점을 마련코자 호를 파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므로 김용옥, 최동근 양대위가 거느리는 2개중대 200여명이 대대장 김한주 소령의 지휘하에 이를 척결키로 하였는데, 처음에는 적이 배수의 진을 치고 있음에 착안하여 분대규모로써 탐색공격을 몇 차례 시도하였으나 적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대대장이 대대원을 횡대로 전개토록 한 다음, 대대 나팔수로 하여금 돌격나팔소리를 우렁차게 울리게 하면서 돌격을 호령하니 중대장 김용옥 대위가 선두에서 바야흐로 석양을 등에 지고 백병을 휘몰아 쳐서 그 적을 모조리 물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는데, 이윽고 어두운 그림자가 노들의 수면을 뒤덮어 이 일전의 막을 내리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소련제 Maxim [[기관총]]과 Czecho식 기관총 등 총기 수정을 노획하기도 하였으나, 뒤 이어 강 건너의 마주 보이는 대안에서 겨누어진 적의 전차포와 야포가 집중된 까닭으로 탄약보급 등 지원이 뒤따르지 못한데다 대대의 유일한 [[무전기]]마저 파괴됨으로써 그 전사면에서 더 지탱치 못하고 고지 정상으로 철수하였다가 이어 사단수용소로 집결하였다. 이 동안 수도고지의 북록에서는 별다른 접적상황은 없었다. 제15연대 제1대대(장, 이존일 소령)는 전날의 진지를 계속 확보하고, 제25연대 혼성 제2대대(장, 배운용 소령)는 그 서쪽 능선에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였는데 이 대대도 전날 한강을 건너는 와중에서 분산을 면치 못하여, 시흥에서 수습된 병력이 2개 중대 규모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제15연대 제3대대(장, 최병순 소령)는 10:00에 명령에 의하여 사단수용소에 집결한 다음, 전 연대 S-3 보좌관인 장영종 중위를 대대 S-3로 맞아들이고, 400여명의 대대원으로써 화기중대가 없는 3개 중대로 재편성하여 제25연대 제2대대의 서쪽 당산(△73)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한편, 노량진―영등포 도로의 북쪽 강변지역을 맡았던 공병혼성대대(장, 엄재완 소령)는 제1연대 혼성대대의 증원에 따라, 대방동 파출소의 본부를 월파정으로 옮겨, 한강대교 입구―노량진의 우반부를 담당케되었으며 제1연대의 혼성대대는 당초 제3대대가 그 골간이었으나 대대장 김황목 소령이 사단의 G-3로 전보된 까닭으로 동 부대대장 강완채 대위를 대대장으로 대대교육관 김상옥 대위를 부대대장으로, 김기영, 전상재의 양중위를 중대장으로 하는 2대 중대로 재편되어, 노량진역의 서쪽에서 대방동 삼거리에 이르는 그 좌반부를 맡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